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울산 현대/역사 (문단 편집) == 2010년 이전 == 1983년 12월 6일 [[인천광역시|인천]]/[[경기도|경기]] 지역을 연고로 한 '''현대 호랑이 축구단''' 창단식을 갖고, 1984년부터 프로축구 리그에 참가했다. 당시 [[허정무]], [[최강희(축구인)|최강희]] 등을 창단 멤버로 영입하며 호화 군단을 편성했다. 1987년 [[강원도]]로 연고지를 이전했으며, 1990년 [[경상남도]] [[울산광역시|울산시]]로 연고지를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모기업은 창단 당시 현대그룹의 계열사 현대자동차였으나 1998년 중반에 같은 현대그룹 계열사의 현대중공업으로 이관되었다. 이후 현대그룹이 왕자의 난으로 정몽구의 현대자동차가 계열분리를 하면서 현대자동차와 관계가 끊어졌다. [[울산 현대]]는 1998년부터 2000년 사이 [[현대그룹]]의 대대적인 지배구조 변화과정에서 운영 주체가 [[현대자동차]]에서 [[현대중공업]]으로 인계되었다.[* 1998년 [[정세영]]씨의 아들 [[정몽규]]씨의 [[현대자동차]]가 [[전북 현대 모터스]]를, [[정몽준]]씨의 [[현대중공업]]이 [[울산 현대]]를 맡기로 결정하였으며, 1999년 [[정몽규]]씨가 물러나고 [[정몽구]]씨가 [[현대자동차]] 회장에 선임되었고, [[옥스퍼드 대학교|영국 유학파]] 출신으로 축구를 좋아하던 [[정몽규]]씨는 1999년 현대산업개발 회장에 취임한 뒤 2000년에 부산 대우 로얄즈를 인수하여 현재의 [[부산 아이파크]]로 이어지는 등, 여러 축구단의 운영주체에 변화가 생겼다.] 운영권 인계 후, 울산 현대의 새 운영주체 [[현대중공업]] 프런트가 [[현대자동차]]를 의식하여 몇몇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다.[* 1999년 녹색-노란색으로 갑작스런 팀 컬러의 변경, 서포터 불인정 및 사내 자체응원단의 인위적인 조직, 2011년 서산 경기 파동, 2013년 구단공식 머플러의 Since 1998 사건 등.] 2005년 K-리그 결승전 원정 1차전에서는 [[이천수]] 혼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당시 [[인천 유나이티드]]를 5:1로 발라 버리고, 2차전에서는 1:2로 지긴 했지만 골득실에서 6대3으로 이겨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6년 A3챔피언스컵 '''도쿄'''에서 J리그 우승팀으로 올라온 [[감바 오사카]]를 '''6:0''' 완파하며 한일전 모든 축구매치에서 최다 점수차 경기를 기록 했다.[* 당시 울산 감독은 김정남 감독이었고, 감바 오사카 감독은 2018 월드컵에서 일본 16강 15위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06 울산 오사카 하이라이트 1.gif|width=100%]][br][[파일:2006 울산 오사카 하이라이트 2.gif|width=100%]][br][[파일:2006 울산 오사카 하이라이트 3.gif|width=100%]][br][[파일:2006 울산 오사카 하이라이트 4.gif|width=100%]][br][[파일:2006 울산 오사카 하이라이트 5.gif|width=100%]]}}} || [[중국]] 슈퍼 리그 챔프인 다롄 스더를 4:0으로 각각 떡실신 시키며 우승을 차지하는가 하면, 사우디 챔피언 알 샤밥을 2006년 AFC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6:0으로 발라버리며 '아시아의 깡패'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당시 [[사기캐릭터]]였던 [[이천수]]는 감바 오사카전 당시 감기몸살로 인해 후반에 교체로 들어와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함께 호흡을 맞췄던 [[최성국]] 역시 국내 정상급 공격수로써 손색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K리그가 아닌 '''아시아의 맹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2009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2008 리그 우승), [[FC 서울|서울]](2008 리그 준우승), [[포항 스틸러스|포항]](2008 FA컵 우승) 등과 함께 K리그 대표로 당당히 출전(2008 리그 3위 자격)하여 중국 슈퍼리그의 베이징 궈안을 상대로만 승리했을 뿐 호주 A리그의 뉴캐슬 제츠에게 두 번 다 패하고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에게 종합전적 2-7로 개털리며 K리그 참가팀중 유일하게 동아시아 16강에서 탈락하며 '''아시아의 [[빵셔틀]]'''로 전락했다. [[김호곤]] 감독은 '이동에만 10시간이 걸리는 호주원정이 어떻게 AFC 리그인가'라며 선수들의 체력 안배 및 원정경기의 어려움 등을 고려하여 선발 출장을 짰다고 주장했다. 이 가운데 K리그 개막전 미디어데이에서 '우리 전력으로는 AFC 우승이 힘드니 2군을 기용하겠다.'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큰 파문이 일었다. 다른 팀도 아닌 울산이 일찌감치 아챔을 포기한 듯이 보이는 이런 모습은 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고, [[존 듀어든]]은 칼럼에서 이를 깠다. 후에 김○○ 기자와 인터뷰를 통해 '오해다. 대회를 포기하는 감독이 도대체 어디 있겠는가. 단지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일정이다.'라고 밝혔으나, 한번 등 돌린 여론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사실 울산이 [[현대중공업]]과 [[정몽준]]의 후광에서 벗어나기 힘든 팀이고, 특히 '축구협회 간부=차기 울산 감독'라는 공식 때문에 좋지 못한 이미지가 있었다. 더구나 팀이 성적은 내지만 내용은 재미없는 수비 축구라는 인식도 강했으니... 성적을 내지 못하면 포풍 까일 구석이 많았다. 하물며 과거 K리그 팀들 가운데 아챔 무대에서 끝판대장급 포스를 뿜어댄 팀이라면 단연코 [[성남 일화 천마|성남]]와 울산인데,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였으니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K리그 팬들의 분노가 폭발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2009년은 좋지 못한 시즌이었으나, 언제든 리그 상위권을 충분히 노릴 만한 스쿼드는 갖추고 있는 팀이라... 2010년에는 감독의 역량에 따라서는 다시 부활할 가능성도 크다. 이제 1년차 감독이니 바로 짤리지는 않을 듯.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 2011 시즌 K리그 준우승, 2012 시즌 창단 후 첫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일궈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